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의료기기 시장으로, 연간 약 1400억 유로 규모에 이른다. 인구 고령화, 공공의료 확대, 기술 혁신 등으로 수요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주요국은 의료기기 품질과 안전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시장 신뢰도를 높였다.
하지만 이 장점은 동시에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유럽에 의료기기를 수출하거나 유통하기 위해서는 CE 마크를 포함한 복잡한 인증을 획득해야 한다. 또 유럽 현지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하면 제품은 쉽게 외면당할 수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비용과 기간,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 진출은 “꿈의 시장”인 동시에 “난공불락의 요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에 나선 국내 중소기업들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국내 중소 의료기기 제조사 C사가 유럽 시장 진입에 성공한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인증과 네트워킹 전략을 살펴본다.
경기도에 본사를 둔 C사는 2006년 설립된 정형외과용 소형 의료기기 제조사다. 40명 규모의 소기업으로, 국내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한 납품으로 안정적 매출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내수 의존도가 높아 2018년 이후 경쟁 심화와 보험 수가 하락으로 매출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대표는 해외 수출을 새로운 성장 돌파구로 판단하고, 미국·일본·유럽 시장의 시장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미국과 일본은 이미 대형 다국적 기업의 점유율이 높고 가격 경쟁도 심했다. 반면 유럽은 고령 인구 비중이 높아 정형외과 기기 수요가 꾸준히 증가 중이었고, “Made in Korea”에 대한 신뢰도도 일정 수준 확보돼 있었다.
C사는 유럽 진출을 목표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CE 인증과 현지 유통 네트워크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가 가장 큰 진입장벽이었다.
유럽 의료기기 시장 진입의 핵심 관문은 CE 인증이다. CE 마크는 유럽경제지역(EEA)에서 제품 판매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안전·품질·성능 인증이다. C사는 기계적 안전뿐 아니라 생물학적 위험, 전자파 적합성 등 다양한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C사는 먼저 국내외 규제 컨설팅 업체에 협업을 의뢰했다. 내부 품질 관리 체계를 국제 기준(ISO 13485)으로 업그레이드했고, 제품 설계 문서, 위험 분석, 임상 평가 보고서를 체계화했다.
가장 어려운 과정은 기술문서(Technical File) 작성이었다. 이 문서는 제품의 안전과 성능을 과학적·임상적으로 입증해야 하며, 수백 쪽 분량에 달했다. C사는 약 8개월 동안 내부 팀과 외부 전문가가 협업하며 문서를 완성했다.
유럽 내 인증기관(노티파이드 바디)은 엄격한 심사를 한다. C사는 독일의 TUV SUD를 인증기관으로 선택했다.
심사는 서류 검토→공장 실사→임상 평가 보고서 검토 순으로 진행됐으며, 품질관리 문서 일부에서 보완사항이 지적돼 추가 교정에 3개월이 소요됐다.
전체 소요 기간은 약 14개월이었다. CE 인증을 획득한 이후에야 비로소 유럽 수출이 가능해졌다.
C사 대표는 “CE 인증은 단순 절차가 아니라 회사 역량 전체를 재점검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CE 인증만으로는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럽 의료기기 시장은 현지 유통 네트워크와 인적 신뢰가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C사는 세 가지 전략으로 파트너십을 확보했다.
C사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의료기기 박람회인 MEDICA에 2년 연속 참가했다.
MEDICA 참가 이후 100여 개 유통사와 접촉했고, 20곳과 심층 상담을 진행했다.
유럽 내 유통망을 가진 중견기업과의 계약이 필수적이었다. C사는 네덜란드의 D사와 3년 독점 총판 계약을 체결했다.
D사는 기존에 아시아 의료기기를 수입한 경험이 있어 인증과 물류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 계약에는 연간 최소 물량 조건과 현지 마케팅 협업 의무가 포함됐다. D사는 C사의 기술문서를 자국어로 번역해 병원 구매 담당자에 배포했다.
유럽 의료기기 협회(EMDA)에 가입하고, 네트워킹 세미나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이를 통해 잠재 고객과의 접점을 넓혔다.
2019년 CE 인증 취득과 함께 본격적인 유럽 수출이 시작됐다. 첫해 매출은 소규모에 그쳤지만, 2년 차에는 네덜란드·독일·이탈리아 등으로 수출국이 확대됐다.
✅ 유럽 수출 매출은 첫해 1억원, 2년 차에는 4억원으로 증가했다.
✅ 3년 차에는 총 매출의 20% 이상을 유럽 시장에서 거뒀다.
✅ 유럽 의료전문지에 제품이 소개되며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했다.
C사는 “유럽 진출은 단기 성과보다는 신뢰와 레퍼런스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C사가 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요인은 다음과 같다.
✅ CE 인증과 ISO 품질 시스템 구축
국제 인증을 철저히 준비하며 제품 신뢰도를 확보했다.
✅ 단계별 네트워킹과 전시회 전략
무턱대고 수출하기보다는 정보 수집→관계 형성→계약 체결의 단계적 접근을 택했다.
✅ 현지화 협업
현지 언어 번역, 마케팅, A/S 체계를 파트너와 함께 준비해 고객의 불안을 해소했다.
하지만 도전 과제도 여전히 크다.
🔹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국가의 병원 수요가 위축됐다.
🔹 유럽 내 경쟁사의 가격 인하 압박이 커졌다.
🔹 규제가 점점 강화되면서 인증 갱신 주기와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는 “유럽은 진출보다 유지를 위한 투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럽 의료기기 시장은 여전히 높은 장벽을 유지하고 있지만, 철저히 준비한 중소기업에게는 충분히 기회가 있다. C사 사례가 보여주듯, 성공 요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인증, 네트워킹, 현지화”의 유기적 결합이다.
앞으로 유럽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에게 다음을 권한다.
✅ CE 인증과 ISO 시스템 구축은 필수다.
✅ 전시회·협회·세미나를 통한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
✅ 현지 유통 파트너의 역량과 신뢰도를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 단기 실적보다 3~5년 장기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디지털·헬스케어 융합이 가속화되는 지금, 유럽 시장의 잠재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철저한 준비와 현지 파트너십으로 “꿈의 시장”을 현실로 만드는 중소기업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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