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시장은 자원 중심의 산업구조와 더불어 최근 인프라·건설·제조 산업의 급성장으로 인해 한국 중소기업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2030 프로젝트, 아랍에미리트의 대규모 스마트시티 개발 등은 새로운 수요 창출로 이어지고 있으며, 정부 간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한국 제품은 '품질은 일본, 가격은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중간 포지션을 갖춘다는 평가를 받으며 중동 유통업체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중동 시장은 언어·문화적 차이뿐 아니라 유통망의 구조가 폐쇄적이고, 관계 기반의 신뢰가 강하게 작용하는 특성을 지닌다. 바이어 발굴과 계약 이전에 ‘파트너 선정’이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중동 진출 도전이 실패로 끝난 국내 중소 제조기업 'M사'의 사례를 통해, B2B 유통망 구축의 위험 요소와 교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경기도에 위치한 M사는 산업용 냉각장치를 제조하는 연 매출 30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기존에는 국내 대기업 2차 협력업체로 안정적인 납품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고객 다변화 필요성으로 인해 2021년부터 중동 진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UAE 등에서 진행 중인 공장 건설 프로젝트에 M사의 냉각장치가 납품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국내 건설사의 중동 진출 경험을 활용해 납품 루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후 M사는 해외 전시회, KOTRA 중동 바이어 매칭 프로그램, 통역사를 통한 이메일 아웃바운드 등을 활용해 여러 현지 유통업체들과 접촉했으며, 그중 하나였던 사우디 현지업체 'Z사'와 공식 협업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Z사는 현지에서 HVAC(공조) 관련 제품을 수입·유통하는 30년 업력의 유통업체로, 자체 영업망과 설치팀을 갖춘 회사였다. M사는 Z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현지 마케팅, 영업, 기술지원까지 위임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초도 물량 1,000만 원 상당의 샘플 수출도 이뤄졌다.
당시 M사는 사우디 전시회에도 Z사 부스에 함께 참가하며 직접 현지 바이어들과 접촉했고, 수차례의 제품 시연을 진행하면서 긍정적인 반응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시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계약 직후 6개월 동안 Z사로부터 별다른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M사는 몇 차례 메일과 전화로 제품 문의 상황을 체크했지만, Z사 측은 "아직 최종 발주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현지 정부 인증이 지연되고 있다" 등의 답변만 반복했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실패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Z사는 실제로는 제조업체보다는 도소매에 가까운 수준의 영세 업체였으며, 설치 기술력이나 A/S 대응 능력이 부족했다. M사는 이 점을 사전에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 홈페이지는 그럴듯했지만, 실질적인 프로젝트 수주는 거의 없었다.
Z사에 사우디 전역 독점권을 부여한 결과, M사는 다른 유통사를 병행 접촉할 수 없었고, 계약상 1년간 경쟁사와 협의도 제한됐다. 해당 기간 동안 M사는 사실상 '묶인' 상태였다.
Z사의 담당자는 영어에 능통하지 않았고, M사 역시 아랍어 번역 인력이 부족해 기술 문서, 도면, 유지보수 매뉴얼 전달 과정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했다. 또한, 현지 바이어와의 사소한 약속 어김(답변 지연, 전화 미연결 등)으로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Z사가 추진하던 프로젝트 2건이 최종 입찰에서 탈락했고, M사 제품을 판매할 물리적 기회를 상실했다. 이후 Z사는 더 이상 활동을 이어가지 않았으며, M사의 재고는 반품되지도, 재판매되지도 못한 채 창고에 남겨지게 되었다.
M사의 중동 진출 프로젝트는 약 1년 반 만에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구체적인 손실은 다음과 같았다.
더 큰 문제는 이 실패로 인해 대표와 경영진의 ‘해외 진출’에 대한 신뢰가 꺾였고, 이후 2년간은 국내시장만을 집중하는 보수적 전략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이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다음과 같다.
단순 소개나 이메일 정보로 파트너를 판단하지 말고, 제3자 확인, 실적 증빙, 고객사 인터뷰 등을 통해 실질 역량을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초기에는 비독점 계약으로 시작하고, 일정 매출 달성 또는 기간 후 독점권을 부여하는 단계적 방식이 바람직하다.
중동은 관계 중심 문화이며, 답변 속도와 소통 방식이 한국과 다르다. 현지 커뮤니케이터 또는 대리인을 채용하거나, 현지어 기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단순히 전시회에 참여하고 명함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CRM 기반의 바이어 관리, 영업 히스토리 기록, 회신율 분석 등을 통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M사의 중동 진출 실패는 많은 중소기업이 겪을 수 있는 전형적인 리스크 사례다. 외부에서는 “품질 좋은 제품인데 왜 수출이 안 될까?”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유통망 선정, 파트너와의 신뢰 관계, 문화적 이해, 대응 시스템 구축 등 비제품적인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실패를 교훈 삼아, 중소기업이 해외 B2B 유통망을 구축하려면 단순히 ‘좋은 바이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십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먼저 갖춰야 한다.
글로벌 시장은 기회의 땅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도전에게는 그저 낭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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